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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계<五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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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산 댓글 0건 조회 5,791회 작성일 09-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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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戒)란 신자들이 지켜야 할 행위규범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자들은 사회생활과 일상생활을 통해 이 계를 지키고 실천함으로써 올바른 인간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불교국가를 막론하고 재가신자들이 지켜야 할 개인적인 계율로서 5계(五戒)가 있습니다.

그 다섯가지란 다음과 같습니다.

①불살생(不殺生) - 살아있는 것을 죽이지 말라,
②불투도(不偸盜) - 주어지지 않은 것을 훔치지 말라,
⑧불사음(不邪淫) - 음란한 행위를 하지 말라,
④불망어(不妄語) - 거짓말을 하지 말라.
⑤불음주(不飮酒) - 방일의 원인이 되고 취하게 하는 술을 먹지 말라.

계율은 전술한 바와 같이 타율적 측면과 자율적 측면을 띠는 것입니다. 단순히 하지 말라니까 마지 못해서 지키는 것이 아니라, 계율을 지키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참모습이라는 것을 알고 기쁜 마음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또한 계는 지금까지 단순히 하지 말라 라는 식의 금기로서의 소극적 모습으로 도식적인 풀이만이 되어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대승불교에 이르면 계는 하지 말라 가 아니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라는 적극적 장려의 형태로 탈바꿈 합니다.
단순히 나만 안하면 된다 에서 그러한 고통과 위험에서 남들 까지 구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로 그 적극적 변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계율의 덕목을 하나하나 열거하면서 거기에 담긴 정신과 우리의 실천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1) 불살생계

불교에서는 모든 중생 (衆生 :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나름대로 모두가 부처가 될 수 있는 성질, 즉 불성 (佛性)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이를 실유불성 (悉有佛性)이라고 하는데 이는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구현할 수 있는 자질을 지니고 있는 동시에 그러한 본질은 다른 힘에 의해 구속되거나 속박 당하지 않는 자유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생명의 존엄성을 자신이 침해하거나, 타의에 의해 그 가능성과 자유성이 침해당하거나 중단되는 것(죽음을 당하는 것)을 거부하는 생활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작은 미물 하나라도 함부로 죽여서는 안되며 더더군다나 그 생활터전을 없애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존귀한 인간존엄에 있어서는 더 언급이 필요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불살생계의 적극적 수용은 자신을 지킴은 물론 부당하게 다른 존재의 생명가치와 그 가능성의 구현을 저해하는 모든 요소를 제거하고 다른 생명을 제멋대로 주무르려는 모든 기도를 분쇄하는 것입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자신의 권력을 빌어 수많은 국민을 죽인 뼈아픈 기억을 지닌 이 땅에서 불살생계를 적극적으로 지키는 것은 과연 어떠한 행위를 요구하는가 할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불살생계의 적극적 실천은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을 존중함과 아울러 삿 된 힘에 의해 침해되는 모든 생명을 구해내지 않으면 안되며 궁극적으로는 그러한 삿 된 무리를 타파하는 것입니다.


(2) 불투도계

이는 재가신자의 경제생활에 대한 덕목입니다. 도둑질이란 주지않는 다른 사람의 물건을 갖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물건이란 그의 노동의 댓가와 인간으로서의 가장 본질적 자기구현의 활동인 노동의 산물이기 때문에 이를 훔치는 것은 타인의 노동을, 인간구현의 산물을 부당하게 약탈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계율은 정당한 자기 노동의 대가만을 취하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눈에 보이는 행위로서의 도둑질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 있어서 자본가와 노동자는 서로 이율배반적 관계에 있습니다. 즉 자본가는 노동자를 더 많이 일을 시키면서 적은 임금을 주고 고용하려 하고 노동자는 그런 기도에 의해 수탈 당하는 것을 거부하려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 나라와 같이 인적 자원이 풍부한 국가에서는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자기 노동의 대가보다 적은 저임금에 매여 있는 것은 자본가들이 노동자의 노동을 수탈하는 것인 동시에 노동자들이 저가 노동을 착취당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불투도계의 적극적 실천은 정당한 자기노동의 대가를 받는 것입니다. 물론 그 출발이 ""네가 잘 먹고 잘 사는게 배가 아파서 못살겠다""는 탐욕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저임금으로 존엄한 인간관계를 맺는 것을 저해하는 기도를 중단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불투도계의 적극적 실천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가 아닌 것을 취하지 앉는 성실한 생활을 하는 동시에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기 위해 힘쓰는 것입니다.


(3) 불사음계

이 계는 보통 윤리적 ,도덕적 문제로 해석되는데 크게는 문화적 측면과 궁극적으로는 인간존엄의 사상이 깃들어 있는 계입니다.
현대의 극도로 타락한 성 풍속과 성개방 풍조 속에서 인간이 스스로의 불성을 내재한 존재로서 존엄한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단지 육체적 쾌락의 충족을 위한 도구로서 전락하는 것을 경계하고 그 같은 저속한 풍조를 조장하는 근본을 타파하게 하는 가르침입니다. 이 계율을 제정한 배후에는 남자의 권위와 능력을 표시하는 장식용으로, 성적 노리개로. 가사노동의 노동력으로만 인식되고 억압되어진 여성을 불성을 가진 동등한 존재로 이끌어 올리고 궁극적으로 그러한 욕망충족의 비인격적 관계를 종식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서구물질문명이 가져다 준 폐해와 한편으로 봉건제 속에서, 졸속적 위치 속에 억압 당해온 여성이 남성과 같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인간답게 살려는 인간해방, 여성해방의 논리까지 제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 모순의 실상을 도외시하고 여유 있는 여성들이 모여 남자들도 버려야 할 술과 담배를 피우고 성적 자유를 논하는 것은 진정한 여성해방이나 인간해방일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서로 진실한 사랑으로 맺어져 신뢰하고 존중하는 남녀의 교제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불사음계는 무분별한 남녀의 성행위를 거부함과 동시에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시키고 도구화하는 그 모든 행위 (성적도구, 전쟁의 도구, 상품생산의 도구 등)를 거부하고 성실하고 바른 생활 속에 인간이 서로 존엄한 존재로서 평등한 인간관계를 맺으라는 적극적 의미까지 지니고 있다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4) 불망어계

거짓말은 남을 속이는 동시에 자신을 속이는 행위입니다. 남에겐 진실을 속이거나 왜곡시키는 것은 상대측 지혜를 흐리게 하는 행위이며 지혜의 눈이 흐려지면 진리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어 방황하며 악업을 짓게 되므로 진실된 가르침으로 중생을 이끌어야 할 불자들에게 있어서는 해서는 안 되는 행위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남을 속여서는 안될 뿐더러 개인적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에서 어느 집단이나 특정인물의 이익을 위해 개인과 집단을 기만하는 행위를 금하는 것이며 바꿔 말하면 그러한 기도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현대문명의 발달된 매스컴, 즉 대중전달 매체를 동원하여 민중들을 오도시키고 특정한 사상을 주입하는 가운데서 자신을 지켜 나가고 그러한 기도를 거부하고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불망어계의 적극적 실천인 것입니다

옳은 것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을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부처님의 수많은 전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양심과 정의를 지키는 학생, 불자가 되어야 하고 그를 위해 분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5)불음주계

인간 생명의 본연인 불성을 찾기 위해 고군 분투하는 사람에게 단 한 시간도 방일하거나 정신을 흐리게 하는 일은 있어서도 안됩니다. 이 계는 상당히 논란이 많은 덕목입니다. 그러나 이 계 속에 흐르는 정신을 이해하면 그 논란은 그치게 될 것입니다.
진리를 찾아가는 구도자에게는 터럭만큼의 게으름과 혼미함이 있어선 안되며 그러한 행위에 저해되는 술, 담배 등의 중독성 물질과 프로 야구, 축구 등의 프로문화와 음란영화 , 비디오 등 저질문화에 물들어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시키는 행위를 근절하고 거부하는 것입니다. 석존은 출가 후부터 열반에 드시기까지의 기간동안의 행적에서 단 한번도 방일하거나 농담을 하는 등 구도자의 정신자세를 흐트린적이 없음을 볼 때 우리에게 얼마나 맑고 안정되어 방일하지 않는 태도를 요구하는지 알 것입니다. 이 계는 밝고 안정된 정신자세를 유지하라는 교훈이며 술을 먹느냐 안 먹느냐는 사실상 지엽적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나 불교를 믿는 회원의 일상행위가 음주라면 문제가 있다 하겠습니다. 하여튼 나태하고 방일하지 않고 흔돈 없는 확고한 믿음 속에서 끝없이 정진하는 인간상이 바로 불음주계의 실천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 5계는 외부적 강제가 아니라 불자로서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자율적 행위규범인 것입니다. 계행을 지키는 청정한 생활, 소극적 금기가 아닌 적극적 행위의 실천 속에 불국토는 우리 눈앞에 다가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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